[송유미의 가족 INSIDE] 부정적 감정과 대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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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미 21-07-30 18:17 571 0본문
[송유미의 가족 INSIDE] 부정적 감정과 대면하기
영남일보 인터넷뉴스팀|입력 2015-11-26 | 발행일 2015-11-26 제21면 | 수정 2015-11-26인쇄
"예기치 않은 일로 인한 아이의 분노
억누름보다 솔직표현 기회줘야 치유
가족의 격려와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
지하 보일러실이 폭발하는 바람에 아빠가 큰 부상을 당하게 됐다. 여섯 살의 아들은 아빠가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빠는 침착하게 아들로 하여금 앰뷸런스를 부르게 했다. 아이는 엄마가 올 동안 이웃집에 맡겨졌다. 아이는 큰 충격을 받은 듯 했고 곧 아동심리 치료사에게 놀이치료를 받게 되었다. 아이는 사고가 난 지하 보일러실에 가기를 두려워했고, 엄마가 그때 집에 있지 않은 것과 아빠가 병원에 가서 집에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나 있었다.
아이는 한 달이 넘게 놀이치료를 받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하나하나 표현하였다. 엄마와 아빠는 아들이 자신 안에 있는 분노와 공포를 표출해낸 것을 기뻐했다. 집에는 보일러를 새로 설치했지만 아들은 여전히 그곳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부모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잘 견뎌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공감을 표시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아이와 나누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존 브래드쇼가 쓴 ‘수치심의 치유’에 소개된 사례다. 아이의 감정을 매우 소중하게 다룬 부모들을 언급하고 있다. 건강한 가정일수록 아이의 감정을 소중하게 다룬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만한 일은 언제 어디서나 벌어지지만, 아이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상처를 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어떤 가족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나 상황에서 큰 충격을 받은 아이의 감정을 아빠가 방치하거나, 아이 마음 내부에 일어나는 분노를 무시하거나 혹은 감정을 표출하는 아이를 때리기라도 했다면 어떠했을까? 폭력을 행사했다면 이미 문제가 내재되어 있는 ‘건강하지 못한’ 가정이다. 아이는 아빠의 큰 부상은 자기 때문이고, 자기는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이며, 아빠가 저렇게 된 것은 자기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경우 십중팔구 아빠의 마음속에는 아이가 느끼는 분노 이상의 감정이 이미 내재화된 상태이다. 그래서 아빠는 아이가 표현하는 분노를 보고 못 참아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아이는 결국 아빠의 폭력은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심리구조가 형성된다.
어떤 예기치 않은 사건이나 상황 등으로 인해 아이들이 느끼는 분노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인정되고 표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풀 도리가 없다. 가장 피해가 많은 것은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억압되고, 얼마나 화가 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의 성격적인 특성으로 굳어져 당연한 분노 상황인데도 분노하지 않거나, 그 분노를 자신에게 혹은 남에게 돌리게 된다.
자주 억압되고 무시당했던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성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고 마음 깊숙한 곳에 녹아있거나 침전되어 있다. 이것들은 성인이 되어 어렸을 때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갑자기 폭발하게 된다. 우리가 대인관계나 특정상황에서 마음속에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 감정은 이미 경험했고 침전되어있는 감정이다.
제일 좋은 부모는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해주고 아이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할 때도 받아주며 그 감정을 소중히 여겨주는 부모다. 그러나 이미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 찬 어른이 되었다면 근본적 고통인 자신의 분노에 접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때의 가족 시스템을 그대로 재연하여 자신이 얼마나 가족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잃어버리고 위장된 가짜의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대면하게 해야 한다. 자신의 영혼에 큰 상처를 준 그 순간과 마주하게 하고 그 상처를 다독여주고 어루만져주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그때 자신의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지난날의 일들을 다시 경험하거나 묶인 것을 풀어주고 자기 안에 있는 진짜 감정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다.
<대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songyoume@d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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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인터넷뉴스팀|입력 2015-11-26 | 발행일 2015-11-26 제21면 | 수정 2015-11-26인쇄
"예기치 않은 일로 인한 아이의 분노
억누름보다 솔직표현 기회줘야 치유
가족의 격려와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
지하 보일러실이 폭발하는 바람에 아빠가 큰 부상을 당하게 됐다. 여섯 살의 아들은 아빠가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빠는 침착하게 아들로 하여금 앰뷸런스를 부르게 했다. 아이는 엄마가 올 동안 이웃집에 맡겨졌다. 아이는 큰 충격을 받은 듯 했고 곧 아동심리 치료사에게 놀이치료를 받게 되었다. 아이는 사고가 난 지하 보일러실에 가기를 두려워했고, 엄마가 그때 집에 있지 않은 것과 아빠가 병원에 가서 집에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나 있었다.
아이는 한 달이 넘게 놀이치료를 받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하나하나 표현하였다. 엄마와 아빠는 아들이 자신 안에 있는 분노와 공포를 표출해낸 것을 기뻐했다. 집에는 보일러를 새로 설치했지만 아들은 여전히 그곳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부모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잘 견뎌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공감을 표시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아이와 나누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존 브래드쇼가 쓴 ‘수치심의 치유’에 소개된 사례다. 아이의 감정을 매우 소중하게 다룬 부모들을 언급하고 있다. 건강한 가정일수록 아이의 감정을 소중하게 다룬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만한 일은 언제 어디서나 벌어지지만, 아이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상처를 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어떤 가족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나 상황에서 큰 충격을 받은 아이의 감정을 아빠가 방치하거나, 아이 마음 내부에 일어나는 분노를 무시하거나 혹은 감정을 표출하는 아이를 때리기라도 했다면 어떠했을까? 폭력을 행사했다면 이미 문제가 내재되어 있는 ‘건강하지 못한’ 가정이다. 아이는 아빠의 큰 부상은 자기 때문이고, 자기는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이며, 아빠가 저렇게 된 것은 자기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경우 십중팔구 아빠의 마음속에는 아이가 느끼는 분노 이상의 감정이 이미 내재화된 상태이다. 그래서 아빠는 아이가 표현하는 분노를 보고 못 참아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아이는 결국 아빠의 폭력은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심리구조가 형성된다.
어떤 예기치 않은 사건이나 상황 등으로 인해 아이들이 느끼는 분노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인정되고 표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풀 도리가 없다. 가장 피해가 많은 것은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억압되고, 얼마나 화가 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의 성격적인 특성으로 굳어져 당연한 분노 상황인데도 분노하지 않거나, 그 분노를 자신에게 혹은 남에게 돌리게 된다.
자주 억압되고 무시당했던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성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고 마음 깊숙한 곳에 녹아있거나 침전되어 있다. 이것들은 성인이 되어 어렸을 때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갑자기 폭발하게 된다. 우리가 대인관계나 특정상황에서 마음속에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 감정은 이미 경험했고 침전되어있는 감정이다.
제일 좋은 부모는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해주고 아이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할 때도 받아주며 그 감정을 소중히 여겨주는 부모다. 그러나 이미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 찬 어른이 되었다면 근본적 고통인 자신의 분노에 접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때의 가족 시스템을 그대로 재연하여 자신이 얼마나 가족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잃어버리고 위장된 가짜의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대면하게 해야 한다. 자신의 영혼에 큰 상처를 준 그 순간과 마주하게 하고 그 상처를 다독여주고 어루만져주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그때 자신의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지난날의 일들을 다시 경험하거나 묶인 것을 풀어주고 자기 안에 있는 진짜 감정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다.
<대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songyoume@d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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