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미의 가족 INSIDE] 그래도 폭력 부모에 돌아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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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미 21-07-30 18:16 551 0본문
[송유미의 가족 INSIDE] 그래도 폭력 부모에 돌아가는 이유
영남일보 인터넷뉴스팀|입력 2015-11-12 | 발행일 2015-11-12 제22면 | 수정 2015-11-12인쇄
"대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단 느낌보다
나쁜 관계라도 유지하는 게 낫다 생각"
“오빠와 저는 너무 무서워서 밤마다 문을 잠갔어요. 그날 밤도 아버지는 잔뜩 술에 취해 문을 세게 두드렸지요. 계속 말이에요.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귀를 막고 숨을 죽였어요. 아버지는 문을 부수고 들어왔어요. 술로 비틀거리는 틈을 타서 도망쳤어요. 하지만 붙들렸어요. 아버지는 우리를 구석에 처박아 놓고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정말로 우리를 죽일 것 같았어요."
미영씨(여·32)가 어렸을 때 당한 폭력 현장의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아버지가 언제 갑자기 폭발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 수시로 피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럴수록 더 격분하였다. 안전하게 숨을 곳도 없었고, 아버지로부터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폭력가정의 사례들을 접하면 보통 두 개의 의문이 생긴다. 첫째,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폭력의 피해자인 자식들은 왜 그 부모에게 매달리는가와 둘째, 부모들이 왜 그렇게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자식들에게 폭력을 가하는가이다.
미영씨와 같은 아이들은 부모의 지지와 격려에 대한 기억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폭력을 가하는 부모들과 분리되어야 할 때, 스스로를 지지하는 어떠한 내적 자양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폭력부모에게 다시 전적으로 매달리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대상관계이론가 페어베언(Fairbairn W.R)은 ‘나쁜 대상에 대한 끈질긴 집착’이라고 했다. 아이들에겐 이 세상에 부모란 단 한 사람밖에 없고, 또 부모가 될 수 있는 사람도 단 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박탈당할수록 더욱더 부모에게 매달리게 된다. 왜냐하면 대상관계가 사라져버린 결과, 혼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보다는 나쁜 대상이라 할지라도 관계 속에 있는 것이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은 그 잔인한 부모에게 또다시 반복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되돌아가면서 두 가지 거짓말을 믿는다. 잘못한 것은 자신이고,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맞았다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나쁜 대상에 대한 도덕방어’라고 한다. 이런 상처는 어린 시절에 매를 맞으며 자란 성인들의 가슴속에 변하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 이 낮은 자존감은 곧 자기혐오로 발전한다. 온전하지 못한 대인관계, 자긍심 상실, 무력한 느낌, 몸과 마음을 마비시키는 공포심, 이유가 불분명한 분노 등을 발생시키며 삶을 망가뜨린다. 부모의 폭력을 피해 보호시설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아동들 대부분이 그 부모에게 되돌아가기를 희망하는 것을 보면 더욱더 분명해진다.
나머지 한 가지. 미영씨 아버지는 사랑하고 아낀다는 자식에게 왜 폭력을 가했을까. 미영씨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해보면 그도 아버지, 즉 미영씨 할아버지의 잦은 폭력에 끝없는 불안과 긴장, 그리고 고통이 연속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미영씨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닮은꼴이고 ‘폭력의 순환’, 즉 폭력의 대물림을 겪은 것이다.
미영씨는 결혼 후 아버지의 신체적 학대로부터 탈출했지만, 자기비하를 통한 감정적 학대는 계속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폭력 가해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 악순환은 끊어야 한다. 매를 맞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는 자기 아이들을 때린다. 이젠 자신을 학대한 부모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그만두고, 스스로 무능한 부모 역할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과 양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배우자를, 그리고 자식들을 사랑할 수 없을 거라는 잘못된 생각에 맞서는 것이다. 자신을 돌보는 법도 배워야 한다. 내적 공허감과 싸우는 법도 배워야 한다. 문제만 일으키던 과거의 잘못된 생활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미영씨 사례와 같은 폭력의 대물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구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songyoume@d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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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인터넷뉴스팀|입력 2015-11-12 | 발행일 2015-11-12 제22면 | 수정 2015-11-12인쇄
"대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단 느낌보다
나쁜 관계라도 유지하는 게 낫다 생각"
“오빠와 저는 너무 무서워서 밤마다 문을 잠갔어요. 그날 밤도 아버지는 잔뜩 술에 취해 문을 세게 두드렸지요. 계속 말이에요.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귀를 막고 숨을 죽였어요. 아버지는 문을 부수고 들어왔어요. 술로 비틀거리는 틈을 타서 도망쳤어요. 하지만 붙들렸어요. 아버지는 우리를 구석에 처박아 놓고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정말로 우리를 죽일 것 같았어요."
미영씨(여·32)가 어렸을 때 당한 폭력 현장의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아버지가 언제 갑자기 폭발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 수시로 피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럴수록 더 격분하였다. 안전하게 숨을 곳도 없었고, 아버지로부터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폭력가정의 사례들을 접하면 보통 두 개의 의문이 생긴다. 첫째,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폭력의 피해자인 자식들은 왜 그 부모에게 매달리는가와 둘째, 부모들이 왜 그렇게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자식들에게 폭력을 가하는가이다.
미영씨와 같은 아이들은 부모의 지지와 격려에 대한 기억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폭력을 가하는 부모들과 분리되어야 할 때, 스스로를 지지하는 어떠한 내적 자양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폭력부모에게 다시 전적으로 매달리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대상관계이론가 페어베언(Fairbairn W.R)은 ‘나쁜 대상에 대한 끈질긴 집착’이라고 했다. 아이들에겐 이 세상에 부모란 단 한 사람밖에 없고, 또 부모가 될 수 있는 사람도 단 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박탈당할수록 더욱더 부모에게 매달리게 된다. 왜냐하면 대상관계가 사라져버린 결과, 혼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보다는 나쁜 대상이라 할지라도 관계 속에 있는 것이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은 그 잔인한 부모에게 또다시 반복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되돌아가면서 두 가지 거짓말을 믿는다. 잘못한 것은 자신이고,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맞았다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나쁜 대상에 대한 도덕방어’라고 한다. 이런 상처는 어린 시절에 매를 맞으며 자란 성인들의 가슴속에 변하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 이 낮은 자존감은 곧 자기혐오로 발전한다. 온전하지 못한 대인관계, 자긍심 상실, 무력한 느낌, 몸과 마음을 마비시키는 공포심, 이유가 불분명한 분노 등을 발생시키며 삶을 망가뜨린다. 부모의 폭력을 피해 보호시설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아동들 대부분이 그 부모에게 되돌아가기를 희망하는 것을 보면 더욱더 분명해진다.
나머지 한 가지. 미영씨 아버지는 사랑하고 아낀다는 자식에게 왜 폭력을 가했을까. 미영씨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해보면 그도 아버지, 즉 미영씨 할아버지의 잦은 폭력에 끝없는 불안과 긴장, 그리고 고통이 연속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미영씨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닮은꼴이고 ‘폭력의 순환’, 즉 폭력의 대물림을 겪은 것이다.
미영씨는 결혼 후 아버지의 신체적 학대로부터 탈출했지만, 자기비하를 통한 감정적 학대는 계속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폭력 가해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 악순환은 끊어야 한다. 매를 맞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는 자기 아이들을 때린다. 이젠 자신을 학대한 부모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그만두고, 스스로 무능한 부모 역할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과 양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배우자를, 그리고 자식들을 사랑할 수 없을 거라는 잘못된 생각에 맞서는 것이다. 자신을 돌보는 법도 배워야 한다. 내적 공허감과 싸우는 법도 배워야 한다. 문제만 일으키던 과거의 잘못된 생활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미영씨 사례와 같은 폭력의 대물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구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songyoume@d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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